스펀지와 필터

스펀지와 필터

스펀지와 필터

설거지를 하려고 스펀지에 세제를 묻힌 뒤 물을 적신다.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펀지의 종류가 약간 다르고, 세제가 아니라 보디샤워라는 것이 차이일 뿐.
머리를 자를 때는 털어내는 용도로 스펀지를 쓴다.

락다운으로 인해 MOT는 6개월 연장되었지만,
그렇다고 차량 관리 주기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으니 에어컨필터를 교체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다보니 청소도 자주한다.
청소기에 들어가는 필터도 두 개나 된다.
그것도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교체한다.

스펀지와 필터.
비슷하게 생겼다.
간혹 어떤 필터에는 스펀지가 달려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니
구성적인 차원에서 그 둘은 부분집합과 전체집합의 관계일 수도 있고,
서로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할은 판이하게 다르다.

스펀지의 역할은 흡수하는 데 있다.
머리 자를 때는 털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고유의 역할이라 할 수는 없다.
쓰던 칫솔로 운동화를 씻는다고 해서
칫솔의 역할이 신발 닦이가 될 수 없듯이.

필터의 역할은 흡수한 것을 걸러내는 데 있다.
그러니 필터는 스펀지의 전체집합이자,
혹은 서로소의 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온갖 꽃가루가 날리는 요즘 날씨,
에어컨필터는 이를 걸러 차량 내부로 깨끗한 공기를 보내준다.
청소기에 달린 필터도 마찬가지다.
먼지통 안의 미세먼지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걸러준다.

한참을 이런 생각에 잠겨있다,
문득 사람도 스펀지형과 필터형이 있음을 본다.

어떤 사람은 스펀지다.
배운 대로 살고, 들은 대로 내뱉는다.

이런 사람은 대개 현실적이라는 말을 듣거나
속물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세상을 빨리 파악한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데 능통하다.
비판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다.
줏대가 있다는 말보다는 융통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반대로 필터형이 있다.
받아들이되, 그대로 내뱉지 않는다.
눈치가 없어 보일 수는 있지만 줏대가 있다.
비판적이지만 부정적이지는 않다.

여러 가지 도전들에 직면한 시대이다.
동성결혼(대리모), 안락사, 빅데이터와 사생활, 인공지능 등
누군가는 이 분야의 얼리어답터(?)를 자청하지만,
정작 그 모습은 스펀지에 불과하다.
결과는 동어반복.
A=A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동어반복이
세계에 대해 말해주는 정보는 없다.
스펀지형 인간의 한계이다.
그는 이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조심성 많은 성도는 수도사를 자처한다.
스펀지가 아니라 기름종이다.
말이 좋아 조심성이 많은 것이지
그는 항상 세상을 겉돈다.
그 역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이 땅에는 필터형 성도가 필요하다.
흡수하되, 신선한 것으로 뱉어주는 것.
오염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여
세상을 향한 산소를 뿜어내는 것.

우린 너무 스펀지가 아닌가,
아니면 경건한 척 기름종이의 길을 가진 않는가?
필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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