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좋은 것

정말로 좋은 것

정말로 좋은 것

세계 7대 난제(밀레니엄 문제)로 꼽히는 것 중 푸앵카레의 추측이 있다.
1904년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하였다.
짧은 나의 지식으로 설명하자면,
3차원에서 경계(구멍) 없는 단일 연결체는 구와 위상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이다.

이후 100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던 난제.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이 증명한다.
이어 3년간의 검증 끝에 이 풀이는 인정되었다.
인간이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제 가운데 한 문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노벨 수학상은 없다.
대신 필즈상이 그에 준하는 권위를 가진다.
사실 노벨상은 매년 수상자를 발표하는 반면
4년에 한번 수상하는 필즈상의 위상이 더 대단하다 말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2006년 그의 수상이 발표되었을 때.

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내 증명이 확실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면 더 이상의 인정은 필요 없다.”
“내 수학을 바로 심사할 수학자가 없다고 본다.”
밀레니엄 문제를 제시했던 클레이 수학연구소의 상금 100만달러(12억원)도 거절한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자격도 거부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홀어머니와 낡은 투베드 아파트에서 지금껏 살고 있는 그는
명예나 돈에 전혀 관심이 없다. 전혀.
그저 수학이 좋았을 뿐.
제발 상을 받아 달라는 애원도, 상금을 수령해 달라는 애원도
그에게는 유혹 꺼리도 못되었다.
직접 찾아간 기자는 아파트 문도 열게 하지 못한 채, 호통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노모에게 나오는 연금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도 불편이 아니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수학자 아벨.
22살의 젊은 나이에 5차 방정식 이상의 고차 방정식은
대수적 방식으로 해를 구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인류는 고차 방정식에서 근의 공식 따위를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27세로 요절하기까지 그는 가난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20대의 수학자에게 지금껏 인류는 빚을 졌다.

수학자의 수학자, 오일러가 신을 이렇게 증명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오일러 상수에 허수 i, 원주율 π 승을 하면 –1이라는 놀라운 단순함.
그는 신을 보았다.

칸토어는 정신병동에서 죽는 순간까지
무한집합의 크기 비교에서 미쳐(?)있었다.
인류 처음으로 그는 무한집합에도 크기가 있음을 증명한다.
큰 무한이 있고, 작은 무한이 있다.
이 집합의 농도를 ‘ א’ 알레프로 표시한다.
히브리어의 첫 알파벳을 딴 것이다.
그 역시 무한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도, 실상 행복했다.

뒤늦은 나이에 수학을 좋아했던 나는,
이들의 삶을 동경했다.
정말로 좋은 것을 아는 삶.

사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수단으로서 한다.
학생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공부한다.
직장인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일한다.
종교인도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섬긴다.
그러니 행복할 턱이 있나.
유혹에 취약할 뿐.

로또라도 된다면, 당장이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집어치울 기세다.
우리네 삶은 이처럼 애석하고도 비참하다.
로또라면 당장이라도 집어치울 일을 위해 소중한 오늘을 살고 있다.
당장 집어치울 수 있는 일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삶.
예레미야의 애통함이 바로 우리 삶이다.

앞선 수학자들의 삶에서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로또 당첨금을 집어치웠다.
애당초 사지도 않았겠지만, 준다고 애걸복걸하는 수학회의 대표에게도
아파트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나에게 정말 좋은 것은 무엇인가?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그 어떤 유혹이 닥쳐도,
억만금이 주어져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았다면 당신은 이미 승리자다.
당신의 삶은 이미 눈부시다.
당신을 담고 있는 아파트가 허름한 국민주택이라 할지라도.
노모의 연금으로 마트에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라 할지라도.
이미 세상을 이긴 삶이다.
그는 이미 번개처럼 떨어진 사탄을 보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다시는 충전되지 않을 모든 시간 중
또 하루가 깎여 나간 줄도 모르고
그저 오늘 하루의 일당만큼 차오른 예금 잔액에 흡족해하는
불나방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나는 오늘도 그런 삶을 동경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