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

힘들 때 하나님의 신실함을 기억하기 [시편3편]

설교자
이웅 전도사
작성일
2020-02-25 09:10
조회
80

힘들 때 하나님의 신실함을 기억하기 Remembering God's faithfulness in distress [시편3편]


이웅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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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번역]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치던 시절의 기도가 담긴 시입니다.

압살롬은 암암리에 쿠데타를 일으켜 다윗을 전복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사무엘하 15장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다윗이 눈치채지 못한 몇 해 동안,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에 다윗의 통치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습니다.

즉 그 정권의 무능과 약점을 보게 하고 만일 자기가 그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분한 지지를 얻게 되자 헤브론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란은 너무도 신속했고 예상 밖이었기에 다윗은 여전히 자기를 따르는 참모들만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그를 배신하였습니다.

다윗은 슬픔으로 얼굴을 가리고 맨발로 울며 도망하였습니다.

도망가던 중에 다윗은 선왕, 사울에게 충성했던 베냐민 지파 출신의 시므이라는 자에게 큰 소리로 저주를 들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향해, “가거라, 가거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도다!”고 외쳤습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실제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갑작스레 여러 문제들에 부딪힙니다.

건강상의 문제, 사랑하는 이의 궁핍한 환경, 경제적인 어려움, 인간 관계의 악화, 불안한 미래, 이사를 가야하는 때와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겪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다윗처럼 우리도 그럴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는 저주와 같은 말을 주변에서 듣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조차 그런 거짓말을 믿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여러 삶의 난관들은 다른 형태로 또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난관과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너무도 커보일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크시기에 우리의 문제가 너무 사소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고, 우리의 선과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지 못하다고 여겨 자신이 문제를 주도하지 않게 되려면, 여러분이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겼을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계속해서 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생의 어느 시절에 있든지 간에, 힘든 일과 위험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일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인내하고, 성장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첫 번째 요지는 우리의 문제가 너무도 커 보일 때 입니다.

몇 해 전, 제 어머니께서 교통사고에 연루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잘못이 없었지만 이 년 전 부주의로 소송이 걸렸습니다.

원고는 20,000 파운드의 손해배상을 원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법정 다툼에 휘말리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충분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 몇 장은 있었지만 충분하지 못했고, 게다가 우리가 의뢰했던 모든 변호사들의 수임료는 너무 비쌌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우리가 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서류들을 제출해야 할 기한은 언제인가?

우리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가?

원고는 자기로 인해 한 가족이 잠도 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여러분이 갑자기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그 문제를 제거할 수 있는 빠른 방법을 찾기 위한 비상등을 켭니다.

여러분의 급박함과 절박함이 앞서게 됩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풀어 나가고자 애쓰게 되면 계속해서 문제에 마주쳐야 합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더 자세히 보게 될 수록 그 문제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여러분이 보고, 생각하고, 맛보는 모든 것이 바로 그 문제가 됩니다.

그 문제는 너무 커져버려 여러분의 마음, 시간, 수면, 일, 인간관계 모두를 지배합니다.

거기에 평안이란 없습니다.

때로는 확실하거나 쉬운 해결책이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지금 다윗은 무슨 일을 겪고 있습니까?

그는 물리적, 정신적, 영적 전투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를 그를 향해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고 외쳤습니다.

그 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이 앞서 하나님께서 왕을 버리고 그 나라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모습을 본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울에게서 자신에게 넘겼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외치는 말이 사실이라면 왕으로서 다윗의 정체성은 위태로워진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그 자의 말이 진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분명 아닐거야… 그러나 진짜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는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고 여기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아주 어두운 장소가 됩니다.

다윗이 그의 왕국에서 도망쳐야 했던 날을 떠올리며 또 그의 백성들의 무관심을 보았을 때, 그의 문제는 압도적일 정도로 커졌습니다.

그는 무수한 적들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압살롬의 좋은 아버지로서, 그가 위안을 얻고 자랑스레 여겼던 또 목적이 분명했던 자신의 정체성이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그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 가족도 이 법정다툼을 겪을 때, 어머니의 정체성도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로서 가족을 어려움에 빠트렸다고 느꼈습니다.

소송비용이 지나치게 늘어나게 되자 저와 동생도 돈을 보태야 했습니다.

한국인 부모인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는 매우 낙담적인 상황입니다.

어머니는 한 개인으로서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소송의 모든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이 법정소송을 다룰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할 때는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모든 것과 비교하여 진정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할 때만이 우리의 문제가 정말 사소해 보이고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가 다시 온전해 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진정 누구이시며, 또 내 가족, 내 어머니를 위해서는 어떤 분인지를 보는 일은 저에게 확고한 전환점이 되었기에, 우리는 올해에도 끝까지 이 지난한 법정다툼을 해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어려움과 엄청난 문제와 난관에 부딪힐 때 이런 전환점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다윗의 전환점이 되었던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요점은 우리의 문제가 너무 작아보일 때 입니다.

2절 끝에는 잠깐 쉬어가는 ‘셀라’가 있는데 아마 다윗이 3절을 내뱉기 전에 호흡을 골랐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여기 계신 모두는 소위 영국 날씨를 겪어보셨기에 목적지까지 우산을 쓰고 갔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젖은 적이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영국 바람과 쏟아지는 폭우를 맞게 되면 우산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길에 내버려지거나 쓰레기통에 너저분히 걸려 있는 수많은 부서진 우산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런 날씨에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건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가 어떤 방향에서 오든 간에 여러분은 보호됩니다.

비가 무력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묘사입니다.

다윗에게 있어 전환점은 엄청난 문제, 곧 그것이 얼마나 크고 다양하고 복합적인지로부터 하나님이 누구인지로 초점이 옮겨간 것이었습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요.”

이분이 바로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이는 상황이 바뀌어 하나님이 그의 대적들을 물리치기 시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써 다윗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과 비교했을 때 그 문제는 사소해 보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때에 우리 문제는 상대적으로 극히 사소해 보입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자기의 영광으로, 자기의 머리를 드시는 자로 묘사합니다.

다윗의 영광은 자기의 정체성, 자부심의 근원을 말합니다.

여기서 그는 한때는 자기의 굳건한 왕권과 아비됨에 근거했던 그의 정체성/가치가 실제로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진정한 정체성이 되시기에 그는 머리를 들 수 있으며, 이는 자부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인함입니다.

제 어머니는 한 명의 개인, 아니면 한 명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행동과 능력이 한 개인과 한 어머니로서의 가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했습니다.

그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옵니까?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진정한 정체성이 되시기에 그는 머리를 들 수 있으며, 이는 자부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인함입니다.

제 어머니는 한 명의 개인, 아니면 한 명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행동과 능력이 한 개인과 한 어머니로서의 가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했습니다.

그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옵니까?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삶과 죽으심, 부활을 통해 모든 일을 하셨기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 형제로서, 자매로서 의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행한 일이라든지, 아니면 행하지 못한 일이 결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의 정체성과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다윗은 4절에서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고 말합니다.

몇 절 앞에서 다윗은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4절은 하나님이 다윗을 버렸다는 그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답입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여호와께 도움을 부르짖었으며, 그는 내게 응답하셨다!

다윗의 영혼에는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저항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니다!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나의 하나님은 내게 응답할 것입니다.

마치 또 한번의 깊은 숨을 들이쉬듯 4절 이후에도 ‘셀라’가 나옵니다.

5절의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신뢰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건강상의 질병, 사랑하는 이의 처절한 상황, 경제적 곤란 중에 도움조차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 인간 관계의 악화, 불안한 미래에 직면했을 때, 잠을 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면한 그 문제가 여러분이 일을 할 때, 설거지를 할 때, 양치질을 할 때,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여러분의 머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참을 뒤척인 후에 잠이 든다 할지라도 깊은 잠에는 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피곤한 상태로 일어나게 됩니다.

일어날 때는 무슨 생각이 듭니까?

바로 그 어려움과 난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은 잠이 듭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를 붙드시고 돌보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떤 분인지에 대한 확실성이 있습니다.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항상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잠이 들면 언제나 안전하게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놀라운 침착성과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있기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1-2절에서 다윗은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하지만 6절에서 다윗은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고 외칩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두려움의 원인이 되지 못합니다.

한 때는 자기와 자신의 부하들을 대적하던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던 자들이 이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로 여호와에 대한 신뢰로 인함입니다.

이 시기에 여러분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성취되지 못한 꿈이나 바람입니까?

아직도 이를 기다리며 그것이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 두렵습니까?

그것은 현재의, 아니면 미래의 돈 문제입니까?

직장에서의 갈등입니까?

교회에서의 갈등입니까?

자녀의 미래나 부모의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까?

이 모든 힘든 상황과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해결책은 그에 대한 생각을 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전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 중심을 두는 방법은 조금 물러서서 더 큰 그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능하신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자리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점입니다.

바로 우리의 문제가 하나님의 손에 있을 때입니다.

다윗이 문제에만 주목하는 데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를 좋아하시고 무엇을 행하실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전환점을 삼았다고 해서 그가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지는 않았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기에 그는 “그러나 여호와 주는 나의 방패시요”라고 선포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나서도 실제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배신 당하고, 대다수의 백성들에게 버림 받은 왕으로서의 그의 처지와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힘들고 위험에 처하게 된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여러분도 겪을 일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강해진다고 해도 건강상의 질병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들의 곤핍한 상황은 여전히 곤핍할 것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대책이 필요할 것이고, 인간 관계는 여전히 회복이 필요할 것이며, 불안한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금 큰 그림을 놓치기 쉽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직면한 문제에 비해 하나님이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이 보이는 장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을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는 훈련을 그만두고, 큰 그림을 좁은 시야로 보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다시 크게 보일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신실하지 못하다고 여기며 여러분이 주도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인내할 필요가 있으며,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꾸짖고 바르게 세움으로 인내할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라 부르는 이들로부터의 권면과 격려, 기도를 통해서도 그런 힘을 얻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합니다.

사랑의 꾸지람은 동료 신자로 하여금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권면은 그들에게 예수를 바라보는 일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격려도 그들이 예수를 바라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32에서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십시오.

은혜를 통해 당신이 얼마나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보십시오.

그분이 얼마나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당신이 여전히 죄인 되었을 때에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으시고, 예수의 의의 옷을 당신에게 입히시고 당신을 책망할 것 없고, 죄 없이 온전하게 보이도록 하셨는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제 당신을 포기하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분의 인내가 줄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이 일어나서 당신을 구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당신의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시고 당신을 괴롭히며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고 믿도록 유혹하는 음성을 침묵시키실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충실하시며, 그분이 당신을 향해 보여주시는 이 충실함과 신실함은 당신이 받아 마땅한 것이거나 일종의 보상이 아닙니다.

이는 힘든 시기에 당신이 인내하고 기도하고, 다른 개인적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교회에 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이 영원토록 충실하며, 영원토록 신실하며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까닭은 바로 예수께서 그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이루신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일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신실할 것입니다.

당신이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기에 하나님이 당신의 방패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한 고발을 잠재우고, 당신의 불의에 대한 결백을 입증해 줄 분명한 방패가 되신 것은 당신을 대신하여 예수께서 보여주신 온전한 순종 때문입니다.

생명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그에게 두십시오.

여러분의 방패 되신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그는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복됩니다.

여러분의 곤란 중에 인내하십시오.

힘들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