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사람의 향기

지성, 사람의 향기

지성, 사람의 향기

향수 냄새는 호불호가 갈린다. 
가격, 브랜드를 떠나 싫은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서 뿌리고 다닌다. 
누군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을 때
때로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내가 싫어하는 냄새라도 누군가는 좋아해서 뿌렸을 테니…
 
나는 향수를 쓰지 않는다. 
가끔 선물로 들어오는 향수를 방향제 삼아 뿌리곤 한다. 
준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내게도 냄새가 난다. 
운동한 뒤에는 땀 냄새가 나고,
식당을 다녀오면 온갖 잡냄새가 겉옷에서 올라온다. 
자주 들리는 펍을 다녀오면 꼭 비릿한 술 냄새가 묻어난다. 
그 날의 냄새는 그 날의 흔적이다. 
 
물론 이런 물리적 냄새는 감출 수 있다. 
탈취제를 뿌리든, 향수를 뿌리든 얼마든 조작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백화점 1층은 늘 향수 샵이 아니겠는가? 
조작과 기만, 인간은 늘 자신을 감추고 과장하기 바라니까.
 
무엇이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열정, 헌신, 희생, 용기, 돈, 타고난 외모.
 
돈을 가진 사람에게는 없는 사람이 풍길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재력에서 나오는 여유. 마음 씀씀이의 넉넉함. 
아마도 그런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도 돈 안되는 공부를 마칠 수 없었으리라. 
 
털이 복슬복슬한 갓난 강아지처럼
미소를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가 주는 매력이 있다. 
미남과 미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한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싶지만 
그것만은 시민 사회의 교양으로 억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 냄새는 지성이다. 
지성은 속일 수 없다. 향수처럼 한 번에 ‘칙’하고 감출 수 없다. 
마음먹고 한 시간만 대화하면 그 지성의 바닥이 드러난다. 
하지만 향수와 공통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향수처럼 지성도 점점 흐려져 간다. 
매일 뿌리지 않으면, 곧 어제 먹은 고기 냄새만 남아 있다. 
 
젊은 시절 얼마나 좋은 대학을 나왔든
어떤 치열한 고시에 합격했든
근래 똥 밭에서 뒹굴며 지냈다면
풍겨질 냄새는 뻔하다. 
 
또한 이 지성의 냄새는 대체할 수 없다. 
오롯이 나의 것이다. 
똑똑한 내 자녀의 지성으로
유명한 내 부모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내 배우자의 지성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뒤늦게 자기 냄새를 눈치채고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여 숨기려 해보는 
안타까운 몸짓에도 어쩔 수 없이
내 냄새는 나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풍기는 냄새에 대한 책임이 있다. 
 
누군가는 드라마에 대한 냄새를 풍긴다. 
누군가는 정치 냄새, 누군가는 자녀 교육 냄새, 
누군가는 시시콜콜한 루머에서 나온 잡냄새, 
누군가는 돈 냄새를 풍긴다.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인 향수 냄새처럼, 
끼리끼리 어울려 냄새를 즐긴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교회는 어떤 냄새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듯, 
그의 고민이 궁금하듯, 
그의 꿈 얘기가 듣고 싶듯, 
일평생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교회를 꿈꾼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떤 목적, 학위, 취직, 수료증을 위해서가 아니라
‘냄새’ 그 자체를 위하여 
우리의 지성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사귀는 삶. 
 
시간대별로 날씨를 예보하는 슈퍼컴퓨터처럼
시간대별로 하나님을 더듬는 지성을 갖기를, 
그리고 그 지성이 나의 냄새가 되기를, 
소망하는 꿈은 지친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다는 시인의 노래처럼, 
너는 나의 지성에서 
나는 너의 지성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싶다. 
 
‘알아감’에는 고통스러운 힘이 있고, 
세상 그 어떤 향기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둔탁한 껍질 속에 감추인 진주처럼, 
숨겨진 그 매력을 찾게 되면 눈을 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감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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