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권세들, 나치에서 세월호까지

우리 삶의 권세들, 나치에서 세월호까지

우리 삶의 권세들, 나치에서 세월호까지

*헨드리쿠스 베르코프의 <그리스도와 권세들> 역자 서문 발췌 인용
 
 
귀신론과 천사론은 신학의 후미진 구석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주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판타지 소설이나 세련된 영화를 몇 편 봄으로써 더 풍성한 상상력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결코 그런 상상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제국과 결탁한 권세들과 종교 권력의 배후에 있는 권세들을 보고, 그들의 인격적 특성에 관한 논란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그들의 세력을 다루고자 하였다. 그리스도 역시 권세들의 실제적인 영향에 주의를 기울이셨다. 예수는 그가 기도하는 사이 잠든 제자들을 노리던 사탄과 가룟 유다와 베드로 뒤에 있던 마귀를 잘 알고 계셨다. 즉 권세들은 은유의 풍성한 상상력에서 생명을 공급받아 형이상학 속에서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현실을 바탕으로 역사하는 실존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권세들>에서 저자는 권세들이 더 잘 드러나는 시기와 장소가 있다고 언급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권세들의 역사를 뚜렷이 목격하였다. 국가 권력, 사법 제도, 행정 체계, 종교(구원파 뿐만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등 사회 총체적인 구조가 타락한 권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것을 보았다. 이 끔찍한 사건을 통해 여러 분야에 도사린 권세들은 사람들에게 절망을 심어주고 서로 간에 뿌리 깊은 불신을 심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들었다. 우리 손으로 뽑은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권세를 보았다. 우리가 세운 행정 체계 속에서 자기 보신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경시하는 자들을 통해 권세를 보았다. 심지어 우리는 일부 목사들의 언행 속에서 적그리스도적 권세를 보았다. 마치 군대 귀신이 들린 자처럼 세월호는 여러 권세들을 환히 드러내며 침몰하였다. 
 
이런 타락한 권세들에 대한 관점은 월터 윙크의 3부작에서 훨씬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윙크는 이런 권세들을 물질적 구조의 영적 차원으로 보았다. 자끄 엘륄도 타락한 권세들이 이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를 말살시키고 믿음를 꺾는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런 권세들이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예수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근래에 J. 데니 위버는 『비폭력 속죄』(The Nonviolent Atonement, 2001)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타락한 권세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공모했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를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악에 대한 적극적 대응자로 보는 내러티브 승리자 그리스도론을 주창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비폭력 전통에 속한 학자들 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도 권세들에 대한 이런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존 하워드 요더가 후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리처드 마우는 『정치와 성경의 드라마』에서 왜 정치와 경제가 신학과 결별해서는 안되는지 설명하며 권세들의 지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의 필요를 역설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에서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비판하며 타락한 구조의 개혁을 부르짖는다. 그는 여기서 엘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아주기까지 하며 권세에 대한 엘륄의 관점을 길게 인용한다. 나아가 전신 갑주의 방어적 역할을 강조한 베르코프와 달리 칼빈주의자들은 더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추구한다. 
 
베르코프가 누차 강조하는 바, 십자가에서 정체가 탄로난 권세들은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복귀’할 수 없다. 이들 역시 구원의 대상이다. 따라서 베르코프는 6장에서 ‘기독교화’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개정판 서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록 그는 더 이상 그런 개념을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는 ‘기독교화’로써 그가 어떤 실천적 의미를 교회에 부여하고자 했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베르코프를 둘러싼 ‘비신화화’와 ‘신화화’ 사이의 논쟁은 한층 더 거세지지만 신화화에 관한 신학적 유행이 지나간 지금 다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연구가 적용적인 측면보다는 권세들에 대한 바울의 신학에 집중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후기에서 밝힌 바대로 적용과 실천은 우리의 과업이다(베르코프는 무심하리만큼 후학들과 독자들에게 공을 넘긴다). 정치, 경제, 사법, 언론, 과학기술, 문화컨텐츠, 교육, 종교, 국방, 의료복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권세들과 씨름하며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때, 오늘의 비극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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